사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무척 평범한 사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옛날 가족사진을 보면서 그는 감상에 젖는다. 단란한 가족이 찍혀있는 사진을 보며 화목했던 시절과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린다.
특히 아버지를 떠올리는데, 과거 아버지는 선생님이었지만 추문으로 일을 그만두고 테니스 심판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빛바랜 사진 속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서먹한 부자간의 적막함만이 남았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한 상태이며, 좋지 않은 일을 겪고 헤어졌기 때문에 아들인 주인공과 아버지의 사이도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부자지간의 혈연은 어쩔 수 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 뒤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식 땐 전자사전을, 대학원 입학식 땐 넥타이를, 군입대 즈음엔 손목시계를 보내왔다.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그러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이 구절을 통해 아버지가 아들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와닿았다.
여기서 그의 직업은 대학의 시간강사이다. 그리 좋지 못한 형편에 어머니도 모시고 아내도 있는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강의가 끊겨 수익이 없던 시절 타고 다니던 차도 팔아야 할 만큼 말이다.
서울에 살지만 서울을 벗어난 외곽에 위치한 대학으로 통근을 하는 동안 매일 버스를 타면서 바깥 풍경을 본다. 본인의 빛났던 시절, 즐거웠고 열정 있었던 시절은 이제 다 가고 어느새 버스 바깥의 지나가는 풍경 속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곽 교수라는 인물이 주인공을 아는 체하며 서울까지 차를 태워준다는 호의를 베푼다. 안 그래도 그는 곽 교수에게 잘 보여야 시간 강사가 아닌 정교수로 임명될 수 있기에 흔쾌히 그의 제안에 수락한다.
그렇게 한참을 곽 교수와 그다지 영양가 없고, 어딘가 위의 시선의 대화를 한다. 그는 짐짓 경청하는 척한다. 차는 계속해서 서울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다 한 여학생을 교통사고로 다치게 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순간 반주로 딱 한 잔만 했다는 곽 교수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곽 교수는 본인의 승진의 얼마 남지 않았다며 운전을 그가 한 것으로 하자고 하고, 그 제안을 승낙한다.
시간이 흐르고 어머니의 환갑을 맞이해서 어머니, 아내와 함께 태국 패키지여행을 왔다. 비록 지갑 사정으로 인해 일 년이 늦어진 환갑 여행이었지만 그런들 어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즐거운 여행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는 그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 속에 담아둔다.
그리고 떠올린다. 태국여행을 오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는 초라한 행색으로 그에게 돈을 요구했다. 암이라도 걸렸냐고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그에게 아버지는 맞다고 한다.
순간 마음이 덜컹 가라앉았지만 정말 전형적인 이야기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뒤이어 들리는 얘기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았다.
암에 걸린 사람이 아버지 본인이 아니고 지금의 부인이니 치료비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그는 아버지의 부탁을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아니 어머니와 상처받았던 어린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태국에서 그는 정교수 임명 발표가 언제 나는지 계속해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기다리던 문자가 왔고, 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하지만 발신자는 아버지였다.
문자 속 내용은 정중하게 적힌 한 사람의 부고 소식이었다. 아마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아들에게 목숨을 구걸했던 그 사람의 부고 소식일 것이다.
그러던 중, 그는 은사님에게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가 교수 임용에 탈락했을 뿐 아니라 곽 교수의 심한 반대로 좌절되었다고 말이다.
순간 그는 예전의 아버지의 직업이었던 테니스 심판의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더블 폴트“ 두 번의 서비스를 연속해서 실패해 실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게 더블 폴트, 즉 두 가지 실수는 이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하나의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고 살았던 것, 또 다른 하나는 곽 교수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그는 자신을 풍경과 동일시했는데 더블 폴트를 하는 순간 스스로를 뒤돌아봤을 것 같다. 나의 쓸모는 무엇이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왔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뇌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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