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의 세 번째 단편, “건너편”을 얘기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바깥은 여름은 내가 이미 읽었던 책이다. 물론 완벽하게 기억은 못해도 내용은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독후감을 적으려고 한 편 한 편 다시 읽다 보니 안 보이던 내용이 보인다. 소설은 현실 세계를 투영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더 깊게 공감하고 마음이 아파진다.
이수와 도화는 만난 지 8년이나 된 장수커플이다. 같은 집에 살고 같이 생활하며 집주인도 부부라고 생각할 정도의 사이이다. 하지만 8년이라는 세월이 이들을 바꿔놓았다.
도화는 제철 음식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제철 시금치같이 싱싱한 것 말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처럼 의미 있는 날도 좋아한다. 하지만 제철 음식을 좋아하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설레는 일은 이제 없어졌다.
예전에는 이수의 털 부숭한 발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을 정도로 사랑했고, 집 밖으로 사라지는 그를 보면 꼭 사라질 것만 같아 불안해할 정도로 그를 사랑했던 도화는 이제 없다.
도화는 이미 헤어질 마음을 가지고 있다. 현재 서울지방경찰청에 교통정보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도화는 “오십오분 교통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매일매일 성실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반면 이수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12월 24일, 분명 예전에는 특별한 날이었음이 분명했을 크리스마스이브날이다. 이수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와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며 친구의 휑한 정수리를 보며 세월이 많이 지나갔음을 본인도 그 시절이 아님을 상기한다.
몇 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이수, 이마저도 이제는 하지 않는다. 몇 년째 이별을 생각하는 도화, 그때마다 무슨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말이다. 오늘은 말해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오늘도 말하지 못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돌아온 이수 때문이다.
8년 전 그들은 노량진 고시생으로 만났다. 그리고 서로 타오를 듯이 사랑하던 때가 있었다.
요즈음 이수는 항상 도화가 훌쩍 떠나버릴 것처럼 느꼈다. 자신과 너무 다른 처지가 되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도 포기한 채 적성에 맞지 않는 부동산 컨설턴팅 회사의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수에게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도화 혼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본인은 직장인도 학생도 아닌 사회 구성원의 일원조차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데 도화는 훌쩍 멀어져 간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 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도화는 같이 살던 이 집을 나가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러던 중 집주인에게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수가 본인 몰래 집의 보증금을 천만 원이나 빼갔다는 사실을 들었다. 이 집은 도화가 마련한 집이다.
그리고 둘은 마지막 기념일을 맞는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굉장히 비싼 회를 먹으며 말이다. 제철은 아니지만 맛있다는 주인의 첨언이 있는 돔이었다.
도화는 이수에게 묻는다. 보증금을 어디에 썼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수는 몹시 당황하지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입을 연다. 그동안 1호선 전철을 타고 노량진에 갔었노라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도화에게 간청한다. 아직 이수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도화는 말한다.
이수야.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이렇게 끝이 났다. 도화와 이수는. 12월 26일, 푸석해진 얼굴로 9시 55분 교통방송을 하러 온 도화는 노량진의 교통 상황을 전하다가 만감이 교차한다.
노량진에서의 시작, 노량진에서의 마지막 그리고 제철을 채 만끽하지 못한 자신의 연인에 대한 안쓰러움과 보증금을 빼갔다고 하는 집주인아주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느꼈던 자신의 안도감에 대해 생각한다.
12월 26일, 평일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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